칼럼

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77

작성일 2013-06-20 첨부파일


마음으로 수를 논하다 - 마방진의 오일러

요즘 저는 스도쿠(數獨, Sudoku)에 빠져있습니다. 스도쿠의 기원은 스위스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Leonhard Euler 1707-1783)가 고안한 마술 사각형 게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오일러는 이 퍼즐 연구에 라틴 알파벳을 사용했기 때문에 라틴방진이라고 불립니다. 라틴방진은 1984년 일본의 퍼즐 회사 ‘니코리’가 ‘스도쿠’라는 명칭으로 판매를 하면서 인기를 얻었고, 현재 전 세계적으로 펜을 이용한 가장 인기 있는 퍼즐이 되었습니다.

스도쿠는 9x9의 네모 칸 속에 3x3의 네모 칸이 9개가 들어있는데, 1-9까지의 숫자를 3x3의 9칸 뿐 아니라 9x9의 각 줄에 겹치지 않고 써 넣는 게임입니다. 나름대로 중요한 법칙들이 있어서 이것들을 잘 활용하면 고수가 될 수 있습니다.

9x9 라틴방진은 숫자 배열의 경우의 수가 1조의 66억 배(66해)가 넘습니다. 그런데 중간 칸에 숫자를 미리 써 놓으면 경우의 수가 현저히 줄어듭니다. 힌트 숫자를 적게 줄수록 정답은 기하급수로 많이 나올 수 있으며, 힌트 숫자를 많이 줄수록 정답은 하나가 되고 풀기도 쉬워집니다. 그렇다면 정답이 하나 뿐인 퍼즐을 만들 때 필요한 최소 힌트 숫자는 몇 개일까요?

최근 더블린 대학(University College Dublin) 수학자 개리 맥과이어(Gary McGuire) 팀은 이것을 증명하려고 나섰습니다. 16개 힌트 숫자가 주어진 퍼즐을 모두 만들고 성공여부를 알아보는 무식한(?) 방법입니다. 이것 또한 경우의 수가 많아서 퍼즐 하나를 1초에 검증해도 173년이 걸리며, 컴퓨터 1만대를 연결해도 1년이 넘게 걸립니다. 그래서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숫자와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숫자를 구분한 후 불필요한 조합을 제거한 알고리즘을 만들었더니 경우의 수가 54억 개 정도로 줄어들었습니다. 이것을 아일랜드 하이엔드 컴퓨팅 센터(ICHEC)의 슈퍼컴퓨터 ‘스톡스(Stokes)'로 1년간 검증했습니다. 결국 16개의 힌트숫자로는 하나의 해답을 가진 퍼즐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이것은 17개의 힌트 숫자가 필요함을 증명한 셈입니다.1)

수학 증명은 정밀한 연역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모든 경우의 수를 확인해서 정답이 아니니까 증명되었다고 하는 것이 뭔가 이상합니다. 어떤 수학자는 이런 컴퓨터의 무차별적인 공격은 계산이지 증명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라틴방진을 창시했던 오일러는 분명히 순수한 인간의 암기력, 상상력을 발휘하여 계산이 아니라 증명을 시도했던 수학자입니다. 그 이유는 오일러가 시각장애자였기 때문입니다.

오일러는 스위스 바젤에서 목사의 딸인 어머니와 목사였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목사가 되려고 했습니다. 13세에 바젤 대학교의 입학허가를 받았고, 16세에 데카르트와 뉴턴의 철학을 비교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을 정도로 뛰어났습니다. 아버지의 친구였던 당대 최고의 수학자 요한 베르누이가 오일러의 수학적 재능을 발견하고 아버지를 설득했습니다. 오일러는 20세에 파리 아카데미 문제풀이 경연대회에 첫 번째 출전하여 2등을 했는데 1등은 선박 구조학의 아버지가 된 수학자 피에르 보우거(Pierre Bouguer 1698-1758)였습니다. 당시 문제는 ‘배에 돛대를 세우는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는 해마다 열리는 이 경연대회에서 12회 우승하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오일러가 19세였을 때 상트페테르부르크 과학원에서 교수로 있던 베르누이의 두 아들 중 니콜라스가 충수염으로 사망하게 되자 그 공석에 다른 아들 다니엘의 추천을 받게 되었고, 나중에 그를 대신하여 수학부부장까지 올라갔습니다.

‘오일러의 법칙’은 광물의 결정이나 입체도형에서 면, 꼭지점, 모서리의 수를 구하는 방법입니다. 또한 ‘한 붓 그리기’는 모든 변을 단 한 번만 통과해서 도형을 그리는 ‘오일러의 경로’를 말합니다. ‘오일러의 공식’은 지수함수를 삼각함수로 변환하는데 사용합니다. 미적분 외에도 ‘오일러 파이함수’, ‘오일러 각’, ‘오일러 수’, 함수 기호 f(x)의 사용 등 가장 많은 업적을 남긴 수학자가 되었습니다. 미국은 3월 14일을 오일러를 기리며 파이(π)데이(수학자들의 날)란 국가기념일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인생 중 마지막 17년간을 시각장애인으로 보냈습니다. 그는 31세에 러시아 쌍트페테르부르크 과학원(St. Petersburg Academy of Science)의 지리학부에서 지도제작을 하던 중 심한 안통과 함께 한 눈의 시력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 후 59세에 다른 눈의 시력도 소실이 되었지요. 그는 평생 850편에 이르는 수학논문을 썼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중의 반은 그가 완전히 시력을 잃은 후에 작성된 것입니다. 혹자는 ‘오일러는 사람이 숨을 쉬듯, 독수리가 공중에 떠 있듯, 편안히 계산했다.’며 그의 천재성을 찬사했습니다.

구글에서는 올해(2013) 오일러 탄생 306주년을 기념하여 오일러의 다양한 업적들을 한데 모아서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로고를 새롭게 디자인하였습니다.

 

1) Gary McGuire. arXiv:1201.0749v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