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과 특권(tolerance and privilege)
포도막염(uveitis)은 모든 눈 속 염증을 포괄하는 말입니다. 물론 균이 침범하거나, 외상을 받아서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일부를 적으로 간주하여 공격하는 자가면역(autoimmune)과 상당히 관련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면역반응에서 가장 오묘한 점을 꼽으라고 한다면 면역세포들이 과연 어떻게 자신과 자신이 아닌 항원(antigen, 몸의 방어체계를 자극하는 외부물질)을 구별할 수 있느냐는 점일 것입니다.
세균이나 바이러스에는 망막의 단백질과 유사한 물질들이 있는데 이런 미생물이 침투할 경우 면역세포(몸의 방어를 담당하는 세포)들은 어떻게 망막은 보호하면서 균은 공격할 수 있는지 말입니다. 그것은 흉선(thymus)에서 면역의 중심이 되는 t 세포(t 림프구)가 발달할 때 자가항원(autoimmue antigen, 몸의 방어체계를 자극하는 자신의 물질)을 인지하는 t 세포가 제거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처럼 자가항원에 반응하지 않는 상태를 면역관용(tolerance)라고 합니다. 면역관용은 발달단계에서 은밀한 음성적 선택(negative selection)이라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며 이것은 자가항원에 대한 관용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중요합니다. 한 학자는 자신의 물질에 대한 무조건적인 봐주기를 면역무감지(immunologic ignorance)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자기항원에 대한 면역관용이나 무감지가 소실된다면 자가면역질환(autoimmue disease)으로 진행하게 되는 것이지요.
동물연구를 통하여 망막에는 우리 몸의 어떤 다른 곳보다도 많은 자가항원들이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들의 대다수는 망막색소상피(retinal pigment epithelium)에 존재하는 단백질들입니다. 챈(CHAn)과 치(chee)는 실제로 자가항원을 동물에 주입하였더니 사람의 포도막염과 유사한 염증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a는 원숭이에게 사람에게 있는 망막의 자가항원을 주사하여 유발한 포도막염이고, b는 베체트병(behcet disease)이라는 사람의 포도막염인데 망막의 혈관염증 모양이 매우 유사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이런 항원들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균이 감염되면 면역체계는 이들을 없애기 위하여 반응하게 될 것이고, 면역관용이 약한 경우 그 과정 중에 원하지 않는 자가면역에 의한 염증반응이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망막의 자가면역은 망막에 병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생각되었고, 그래서 이것을 적극적으로 억제해야 눈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연구를 통해 정상적인 망막에서도 자가항체가 존재하여 망막을 정상적으로 조절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더욱이 망막의 자가면역은 시신경을 구성하는 세포의 손상을 조절하고 있다는 것도 알려졌지요. 이처럼 망막의 자가면역은 망막을 파괴할 수도 보호할 수도 있는 ‘양날의
검’으로 보고 있습니다.
피부에 염증이 생겼다가 나은 후 대개는 흉터가 남게 됩니다. 혹시 눈에 염증이 생긴 후 미세하게라도 흉터가 남게 된다면 시력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다행히 어릴 때부터 많은 염증이 눈에 생기지만 시력에 치명적인 흉터가 남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눈은 피부와는 다른 보호 장치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지요.
130년 전에 벌써 한 학자는(van dooremall) 이미 그것을 눈치 채고 ‘눈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특별한 권리를 사용하고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즉 적군(항원, antigen)이 침입했을 때 피부에서 보여주는 요란한 염증반응과는 달리 눈에는 이런 반응을 억제하고 통제하는 특별한 기능이 있다는 것이지요. 마치 대규모의 강력한 특수 경호부대원들이 왕궁에 침입한 적을 쥐도 새도 모르게 조용히 진압해 버린 듯한 모습입니다.
이런 특별한 방어수단을 갖추고 있는 것을 면역특권(immune privilege)이라고 하는데, 면역특권을 누리고 있는 장기는 눈외에도 뇌, 간, 부신피질, 연골 그리고 생식기가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곳에 면역특권이 있는 이유는 그 조직의 생존이 개체의 생존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면역특권을 가진 장기는 다른 곳에 이식되거나 다른 조직이 이식되어 온 경우에도 염증을 억제하는 능력을 나타냅니다. 1940년대에 메다와(medawar)는 눈의 앞방(anterior CHAmber)에 다른 조직을 이식했을 경우 거부반응 없이 매우 오랫동안 생존해 있는 것을 보고 이러한 면역특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1980년경 카플란(kaplan)과 스트라이라인(streilein)은 눈 속에(전방, anterior CHAmber) 종양세포를 넣었다가 일정한 기간이 지난 후 이것을 다시 피부에 주입했더니 피부에서 염증이나 거부반응이 매우 감소하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것을 면역편위(immune deviation)라고 하는데 이것은 항원에 대한 면역반응이 전형적이 아닌 조금 다른 길로 유발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이 현상 또한 면역특권의 일종으로 보고 있습니다.
눈의 오묘한 구조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자체가 면역특권 덩어리처럼 보입니다. 먼저 눈 속의 물(방수, aqueous humor)은 외부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만든 것이며, 눈 속에는 면역세포들이 머물만한 림프체계(lymphatic system)가 없으며, 빛이 들어오는 중심축에는 혈관이 하나도 없고, 혈관과 눈 속에는 엄격한 검열이 기다리고 있는 특수한 장벽(혈액안구장벽, blood-ocular barrier)이 설치되어 있으니까요. 그 뿐이 아닙니다. 조금 깊이 들어가면 포도막에는 항원을 잡아먹는 포식세포(macrophage)들이 많이 있고, 방수에는 면역을 조절할 수 있는 물질들이 들어 있고, 눈 속 세포에는 거부반응(major histocompatibility, mhc)이 잘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되어 있고, 눈에서 유래한 면역세포가 t 세포를 활성화시키는 능력이 제한되어 있을 뿐 아니라 활성화된 t 세포를 직접 억제할 수 있는 체계까지 갖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눈의 면역체계에만 있는 이러한 무감지, 편위, 관용 및 특권들은 미세한 시기능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다양한 외부항원과 세균의 침입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고 나아가 몸 전체를 위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남용되거나 오용될 경우 염증이 생길 수 있음을 우리 사회의 특권층도 알아야겠습니다.